2020년에 16억 8천만 원이던 차가 2025년에는 78억 원 가까이에 거래된다는 걸 봤거든요. 5년 만에 값이 다섯 배 가까이 뛴 겁니다. 자동차인데, 자동차가 아니라 자산처럼 움직인 셈이네요.
5년 사이에 값이 다섯 배 뛴 이유
이 차의 이름은 라페라리입니다. 200km 남짓 탄 중고 개체가 57억 원에 팔린 사례도 있었는데요. 신차 가격이 쿠페 기준 약 140만~170만 달러, 스파이더인 아페르타는 200만~220만 달러였다는 걸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몸값이 불어난 셈입니다. 일반 슈퍼카라면 감가가 당연한데 이 차는 반대로 움직였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차, 정체가 뭐길래
201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엔초 페라리의 후속이자 한정판 모델입니다. 개발 코드네임은 F70이 아니라 F150이었는데, 시승차 스티어링 휠 네임태그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흥미로운 건 이 차를 페라리의 진짜 기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당시 페라리의 실제 기함은 F12베를리네타였고, 라페라리는 엄밀히 말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헤일로카에 더 가깝습니다. 람보르기니가 베네노를 기함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름을 두고도 말이 많았습니다. 이탈리아어에서 La는 여성형 정관사인데, 탑기어의 제임스 메이는 이걸 영어로 옮기면 "The Ferrari The Ferrari"라는 요상한 이름이 된다며 놀린 적이 있습니다. 언어유희 하나로 방송 소재가 될 정도였으니, 이름부터 화제성은 확실히 챙긴 셈이네요.
정식 공개 전에는 당시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이던 페르난도 알론소가 테스트 드라이버로 참여해서 피드백을 남겼다고 합니다. F1 드라이버가 직접 몰아보고 손을 본 차라니, 애초에 태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겁니다.
숫자로 보는 성능, 엔진만 800마력
페라리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6.3리터 V12 엔진에 전기모터를 결합한 HY-KERS 시스템이 들어갔는데요. 언론은 대부분 '하이브리드'라는 타이틀에만 집중하지만, 정작 놀라운 건 엔진 단독 출력입니다. 페라리 FXX의 엔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덕분에 엔진만으로 800마력이 나옵니다. 웬만한 하이퍼카 완성차 출력에 맞먹는 숫자를 엔진 하나로 뽑아낸 겁니다.
여기에 모터 출력을 더하면 총 963마력.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2.6초, 200km/h까지는 6.9초, 300km/h까지는 15초가 걸립니다. 최고속도는 359km/h 이상이고요. 다만 맥라렌 P1이나 포르쉐 918 스파이더와 달리 엔진과 모터를 분리해서 전기로만 달릴 수는 없고, 항상 두 동력이 붙어서 움직입니다.
목표는 1000kg 이하, 결과는 1585kg
경량화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개발 초기 목표는 공차중량 1000kg 이하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1585kg으로 나왔습니다.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수치는 아닙니다. 경쟁 모델인 918 스파이더가 1600kg을 넘고, P1도 공식 공차중량이 1547kg이라는 걸 감안하면 라페라리는 오히려 이 체급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거든요. 대배기량 엔진에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얹은 차들이라 냉각수, 윤활유, 연료탱크 용량까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경량화를 위해 무려 4가지 종류의 탄소섬유가 사용됐고, 차체는 풀 카본 모노코크 방식입니다. 전 세대인 엔초 페라리보다 비틀림 강성은 27%, 빔 강성은 22% 높아졌다고 하네요. 시트 각도는 아예 조절이 안 되는 대신 페달 위치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렇게 절약한 공간으로 차체를 낮추고 무게중심까지 낮췄다고 합니다. 편의성은 포기하고 성능에 올인한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나마 F40부터 엔초 페라리까지 이어지던 수동 닭다리 창문이 파워 윈도우로 바뀐 건 나름의 배려였겠죠.
왜 아무나 못 사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페라리는 499대만 한정 생산한다고 발표했는데, 공개 전부터 전 세계 구매 희망자가 이미 1000명을 넘겼습니다. 구매 조건도 까다로워서 최소 페라리 5대는 보유하고 있어야 했는데, 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20대 이상 보유한 고객들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자동차 한 대 사겠다고 페라리 컬렉션부터 갖춰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소비 논리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세계입니다.
여기에 뒷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시 페라리 CEO였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열린 독일-이탈리아 양자회담 자리에서 1대를 더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총 생산량이 500대로 늘어난 겁니다. 2016년 이탈리아 중부 지진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한 결정이었고, 추가 생산된 1대는 경매로 팔려 수익금이 전액 피해자 지원에 쓰였다고 합니다. 한정판이라는 숫자마저 마케팅이 아니라 자선을 위해 깨졌다는 게 이 차의 상징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 같습니다.
되팔이는 꿈도 꾸지 마세요
혹시 어렵게 한 대 구했다고 해도 끝이 아닙니다. 페라리는 라페라리나 F80 같은 초한정판 모델을 신차 구입 5년 안에 되팔면, 이후 한정판 배정에서 영구히 제외할 정도로 되팔이를 싫어합니다. 미국 등에서는 아예 1년 이내 중고 판매 금지, 판매 시에는 공식 딜러망 우선 판매라는 서약서에 사인까지 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소비자보호법 때문에 이런 서약을 강제하긴 어렵지만, 커뮤니티에 몇 달 만에 되판 사례가 올라오면 결국 차대번호로 추적돼서 본사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상위 모델 구매 기회가 평생 막힐 수 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라페라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결국 이 차의 진짜 값어치는 스펙표보다 '아무나 못 산다'는 희소성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페라리 다섯 대쯤 갖고 계신 분이라면 다음 한정판 리스트를 노려보셔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단 시세표는 눈으로만 감상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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